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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거나 인문학 창작소/영화 속 인문학

<바보들의 행진> (1975) 유신정권 아래 성역할에 대한 반기 그리고 좌절

by worker-uni 2022.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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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행진 (1975) 하길종

줄거리

영화는 젊은 청년들이 속옷만 입고 군 입대 심사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병태는 합격, 영철은 불합격. 종강을 맞아 철학과 학생 병태와 영철이는 타 대학 불문과 학생들과 미팅을 하게 된다. 두발 규제로 인해 잡히게 되지만 이내 탈출한다. 병태의 짝은 미팅에 나오지 않고 길에서 얼굴만 비추고 이내 돌아서려고 하지만 병태는 그녀를 따라간다. 영자가 향한 곳은 교수님의 집이다. 영자는 연극 연습을 하느라 학점을 망쳤다고 불평을 하고 교수는 영자에게 내일까지 리포트를 써오게 한다.

영자는 병태에게 리포트를 대신 써줄 것을 요청하고 그 대가로 연극 표를 준다. 연극이 끝난 후 병태, 영자 일행은 술집으로 향한다. 영철은 자신이 얼마나 무능력한지, 돈으로 대학을 들어왔다며 푸념한다. 철학과 나오면 무엇을 하냐는 여학생들의 질문에 그는 빨뿌리 공장을 해 돈을 많이 번 다음 "빨간 지붕 양옥집"을 사고 고래를 잡으러 동해바다에 향하겠다고 한다. 다음날 영자는 병태가 하는 축구 경기를 보러 간다. 결혼하자는 병태의 말에 영자는 철학과 나와서 뭐해 먹고살래라며 핀잔을 준다. 영자의 친구들한테 진탕 뜯긴 병태, 시무룩한 병태를 보며 영자는 계집애들도 안 그러겠다며 핀잔을 준다. 개중 병태의 친구 영철도 자신의 순자에게 구애를 하고 데이트를 잡는다. 하지만 여자를 다루는 게 익숙하지 않은 영철은 뚝닥거리고, 술에 취해 전에 했던 고래이야기를 또 반복한다. 영철은 결국 퇴짜 맞고 술에 잔뜩 취해 밤거리를 거닐다 통행금지 시간을 어겨 경찰서에 구금된다. 응원 연습이 한창인 대학, 병태는 왜인지 응원에 참가하지 않고 혼자 교실을 지킨다. 영철과 병태는 친구들과 포켓볼을 치고 있다. 이때 영철이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에 대한 믿음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에 친구들은 당구장 아이에게 오백 원을 주며 거스름돈을 바꿔오라고 시키는 내기를 한다. 아이는 예상을 깨고 돈을 정직하게 바꿔오고 영철은 미소를 띤다. 화면은 전환되고 영자와 함께 동물원에 놀러 간 병태. 영자는 병태에게 자신이 시집을 간다 전한다. 또다시 화면 전환. 문과대 술 먹기 대항전 날이다. 대회에 참가해 술에 잔뜩 취한 병태를 영자가 데리러 간다. 순자를 향한 영철의 끊임없는 구애, 또다시 병태를 밀어내는 영자. 착잡한 마음을 가지고 두 청년은 무작정 바다로 향한다. 군대마저도 불합격인 영철, 군대에 조만간 들어가야 하는 병태. 다르지만 비슷한 두 청년의 쓸쓸한 발걸음. 바다에 선 영철은 문득 바다는 자신의 마음속에도 동해가 있었고 그것을 잡으러 혼자 떠난다. 영철은 자전거를 타고 또 탄다. 혼자 남은 병태 그는 사무치게 외롭다. 그들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영철은 동해바다 끝에 도착하고 푸른 파도 속에 몸을 던진다. 병태는 입영 열차에 몸을 던진다. 영자는 눈물로 그를 떠나보내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를 처음 보고 사실 이렇다할 줄거리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뚝뚝 끊기는 내용들, 빠르게 바뀌는 화면 구성들이 꽤나 부자연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유신 정권에 의해 많은 부분이 검열 당해 30분이 넘는 불량이 잘려나가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한다. 빠른 화면 전환이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나중에 가서는 단편의 장면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게 제법 예술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두발규제 장면과 노래 “왜 불러”

 

군부 독재 정권 하의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 왜 영철은 죽을 수밖에 없었는가? 왜 영자는 변화할 수밖에 없었는가?

1960년대 신흥 중산층은 국가에 의해 프레임화 된 남녀의 성 역할 속에서 생산되었다. 박정희 정권이 주장하던 "현대적인 시민의식(Modern Citizenship)은 전적으로 폭발적인 경제 성장에 기대어있었고, 이는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눈멀게 하였다. 경제 성장을 위해 이상적인 중산층 남성을 고숙련 화이트 칼라 노동자로서 국가의 발전과 가정의 안정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으로 이미지화하였다. 이때 군대는 국가적인 사업으로서 이러한 "진짜 남성"들을 생성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첫 장면 속 속옷만 입은 청년들을 엄하게 통제하며 신체를 검열하는 것은 아주 사적인 영역까지 국가가 엄격히 통제하고 조작하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남성들이 군대를 갈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이 "육체적으로 건강하며 찢어지게 가난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또한, 당시 군대는 남성들이 훗날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을 익히는 기관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적인 맥락을 이해했을 때 우리는 영철의 죽음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영철은 단 한 번도 무언가를 이룬 적이 없는 사람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불합격하고, 대학교는 돈을 내고 들어왔다. 그런 그가 군대마저도 탈락했다는 것은 사회의 바운더리에서 밀려난 진정한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래를 잡는다는 꿈을 꾸고, 사람을 믿는 이상 속에 사는 그는 '생산적인 노동력'만이 인정받는 세상 속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영철의 죽음과 뒤에 깔리는 노래 고래사냥의 조화가 제법 인상적이다.



사회적인 생산성이 강조되는 남성과 반대로 여성의 경우 검소하게 가정 경제를 꾸리며 현명한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이상적인 역할이었다. 여성이 일을 하더라도 많은 경우 저소득 단순노동에 국한되었고 이는 이들이 사회에 진출하는데에 장벽이 되었다. 영자와 친구들은 대학교를 다니는 나름 당시 "엘리트"였음에도 불구하고 "난 여자로 태어난 걸 후회해. 여자가 제일 불쌍해. 시집가면 애낳고, 남편 월급 쪼개고, 시어머니 신부름 하다가 죽겠지"라며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한다. 영화 속에서 비추어지는 영자는 사실 "억압되고 순종적인" 여성은 아니다. 사실 그녀는 자신의 여성성을 이용해서 남성들을 조종해 우위를 점하기도 하고 이득을 보기도 한다. 꽤나 발랄하고 말괄량이인 편이며 한편으로는 독단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그녀는 시대의 여성상에 대해 대놓고 비난의 말을 던지기도 한다. 하지막 마지막 입영열차의 장면에서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병태에게 밥 잘 챙겨 먹고, 세수 잘하고, 깨끗하게 지내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장면은 제법 어머니 같아 보인다. 심지어 그녀는 직접 싸온 도시락을 병태에게 먹여준다. 결국은 현모양처의 역할로 돌아가는 여성의 모습을 영자라는 캐릭터로 비춘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병태야 고개 좀 내밀어봐!


참고 문헌-Seungsook Moon <Militarized Modernity and Gendered Citizenship in South Korea> (2005)

 

질문들

-왜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제목일까? 누가 바보인 것일까? 아무 것도 이룬 게 없는 영철, 무기력한 병태, 술에만 빠져 사는 대학생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정권, 정권 아래 군인의 신분으로 획일화되는 청년들 중 제목에서 말하는 바보가 누구일까?

 

-영철은 좌절한 것일까 저항한 것일까? 그의 표현으로 그는 자살한 것이 아니다. 다만 그는 고래 사냥을 하러 떠난 것이다. 사회에서 살아남기 너무 순수하고 이상적이었던 그는 현실에 짓밟히기보다는 꿈을 향해 나아간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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