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혐오하는가?
가족의 생계로 책임졌던 믿음직한 가장 ‘그래고르’는 어느날 커다란 벌레로 변한다. 처음에 가족들은 놀라기는 했지만 음식도 챙겨주고 말도 걸어준다. 하지만 그레고르가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게 되자 가족들 스스로 생활비를 벌게 되고 그레고르는 점점 잊혀져간다. 그레고르는 겉모습만 바뀌었을 뿐 내면은 전과 그대로이다. 하지만 커다란 벌레의 모습으로 바뀌고 나서야 가족에게 자신이 어떠한 존재였는지를 알게된다; 생활비를 가져다주는 수단이고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버려질 존재였던 것이다. 그레고리가 그의 본질로 아껴지는 것이 아닌 수단으로 여겨지고 결국 버려지는 모습은 현대사회의 인간소외의 모습과 몹시 닮았다. 더 나아가 이러한 인간소외는 사회적 약자를, 혹은 “무쓸모”하게 여겨지는 집단을 혐오하는 근원이 된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돈을 벌지 못하는 노인들에 대한 혐오, 가정주부에 대한 혐오, 장애인들에 대한 혐오, 심지어 월 500이상 벌지 못하는 가정은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인터넷에서의 담론 등이 그레고리를 향한 가족들의 반응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다.
현대사회와 혐오
나는 매일 아침식사 때 핸드폰으로 인터넷 뉴스를 훑어본다. 하루하루 분주히 굴러가는 세상살이 이야기를 읽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일이다. 다만 뉴스를 볼때마다 특정 집단에 대한 극심한 반감 표현과 차별적인 언어들이 사용된 ‘혐오 발언’을 하는 댓글들은 나의 눈살을 찌푸려지게 한다. 정치, 사회 심지어 연예 기사에도 빠짐없이 ‘혐오 댓글’은 등장하고, 정치적 성향, 성별 등으로 편을 가르고, 양극단에 서서 서로를 물어뜯기 바쁘다. 혐오 발언이 급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인터넷 댓글판이 혐오 표현의 장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능력주의와 이로 인한 사회구조 변화로 새로운 양상의 집단간 갈등이 등장하게 되었다. 과거 신분, 성별 등에 의해 특정 집단에게만 권력과 부가 집중되던 사회는, 자본주의, 신분제 철폐 등 근대화의 물결에 의해 능력주의 사회로 대체되며 기존에 소수자에 속했던 사람들도 사회활동에 활발히 참여하게 되었다. 또한 민주화 이후 형식적으로나마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확보되면서 적극적으로 소수자 인권운도이 활성화 되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사회활동 집단의 등장은 또다른 집단의 도태를 야기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새롭게 배분된 권력, 경제력에 불만을 가지는 집단, 자신들의 사회적 진출에 장애물이 되는 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집단 등 새로운 이해관계로 엮인 집단들이 등장하였고, 그리고 서로간의 갈등은 갈등의 본질을 넘어선 원색적인 혐오로 변형되었다. 1990년 중반부터 시작된 동성애자 운동이 등장하면서 명명되지 못했던 성 소수자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고, 2000년 초 장애 운동은 이동권 투쟁을 통해 사회에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2000년 전후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이주민이 증가하여 한국 사회의 인종, 민족, 종교의 다양성이 확대되었다. 2005년에는 여성 운동의 숙원이었던 호주제가 폐지되기도 하였다. 1997년 IMF 사태 이후 한국 사회의 경제적·사회적 양극화와 불안이 확대되며 새롭게 사회에 모습을 드러내거나 소수자·약자의 위치로부터 탈출하려는 이들’에 대한 기성 권력층의 공격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었다. 1999년 군가산점 폐지를 기점으로 여성단체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은 온라인의 혐오표현을 알렸다. 2018년 예멘출신 난민들의 난민 신청은 논리적 비판을 넘어선 원색적인 비난으로 변질되었다.
온라인 세상 속 혐오의 가속화
온라인 세상의 고유한 특성은 사회를 좀먹는 혐오를 가속화 시켰다. 몇몇의 급진적이고 극단적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날선 혐오 표현들이 생성되고 집단적으로 이용되며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경우 진입장벽이 낮고, 의견의 공유가 물리적 제약 없이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전통적 집단들은 지연과 혈연 등 공적인 동류의식 기반과 오프라인상의 활발한 활동으로 결속하였다. 반면 온라인에서 형성된 커뮤니티의 경우 결속력을 강화하고 공통의 정체성을 형성을 위해 택한 수단 중 하나가 바로 ‘외집단에 대한 혐오’이다. 실제로 온라인 상에 유포되는 혐오표현의 대다수는 일간베스트, 메갈리아 등의 커뮤니티에서 생성되었다.
혐오발언이 커뮤니티 내에서 공적인 공간으로 확산되는 대표적인 장소는 바로 인터넷뉴스의 댓글판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연구에 의하면 소수자 집단이 혐오표현을 경험한 곳 중인터넷 기사의 댓글이 78%로 가장 많은 것으로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커뮤니케이션의 속도성과 접근성이 강화된 온라인 뉴스와 그 댓글의 경우 500자 내외의 짧은 글로 즉각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타인들의 반응과 의견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클릭 한번이면 가능한 ‘공감’ 기능은 특정 글을 ‘베스트 댓글’로 만들어 온라인 여론 형성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정보와 의견의 생성, 유통, 소비가 검열을 걸치지 않고 순식간에 일어나는 온라인 공간에서 이용자는 댓글을 읽고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를 하기보다는 ‘베스트 댓글’을 중심으로 ‘동조’하는 집단적 심리를 가지기 쉽다. 특히 혐오발언을 포함한 댓글들의 경우 자극적 문구와 특정 집단을 비하하는 은어 등을 사용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끌며 혐오 표현들을 확산시킨다.
인터넷 뉴스 댓글판은 언론과 국민의 쌍방향적 소통을 장려하고, 언론의 투명성을 유지하게 해주는 장치이다. 하지만 논리적 비판이 아닌, 집단간 혐오와 올바르지 않은 여론 형성의 장으로 퇴색되어버린 현대 댓글판은 검은 글자의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사회통합과 발전을 위해서는 급진적 인터넷 커뮤니티, 혐오표현, 댓글창에 대한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거나 인문학 창작소 > 책 속 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승옥 <서울,1964년 겨울> 줄거리와 해석, 외로운 서울의 조각 (11) | 2022.09.26 |
---|---|
<지킬박사와 하이드씨>(1886) 줄거리 및 분석- 인간 본성에대한 고찰 (6) | 2022.09.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