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행을 떠난 고양이
오랜 여행의 역사를 보며 문득 여행이란 인간의 전유물이었나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되었다. 사람들은 길고 외로운 여행길을 개, 고양이, 더 나아가 앵무새나 원숭이 심지어 곰과 같은 다양한 동물들과 함께하곤 했다. 그들은 여행의 대원으로서 쥐잡이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고, 반려동물로서 지친 여행객들의 몸과 마음을 위로해주기도 하였다. 배, 기차, 비행선에 이르는 다양한 운송수단의 기록에서 동물 동행자들의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심지어 비행선과 지상의 역사적인 첫 번째 교신 내용이 “로이, 와서 이 빌어먹을 고양이 좀 치워 ("Roy, come and get this goddamn cat!")였다. 1910년 당시 비행선 아메리카에는 에어십 캣 ‘키도’ (Kiddo)가 함께 했는데 비행에 겁을 먹어 난리를 피운 키도에 당황한 조종사의 다급한 목소리였다고 한다.
유희와 새로운 경험이라는 목적이 주가 되는 현대의 여행에 비해 과거의 여행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모험이었다. 특히나 오랜기간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탐험하는 항해는 난파나 질병 같은 실질적인 위험뿐만 아니라 향수병과 같은 정서적인 불안 또한 동반했다. 한정된 공간과 자원으로 바다를 누벼야 하는 배 위에서 함께할 동물로 고양이는 제격이었다. 이는 1차원적으로 고양이가 쥐를 잘 잡는다는 이유뿐만이 아니라 배에 적응하기 비교적으로 쉬운 특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행동반경이 적고, 정해진 영역에만 배설하며, 깔끔하고, 먹이나 물도 다른 동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필요했다. 더 나아가 배에는 돛대와 같이 고양이가 좋아하는 높은 시설들도 많았다. 상선이나 군함 등의 선박에 동승하는 고양이, 함재 묘(Ship’s cat)는 바이킹 시대부터 세계대전까지의 긴 역사 속에서 선원들의 여행을 도왔다.
2. 1 선상의 사냥꾼, 고양이
인간이 농경사회를 이루기 시작한 이래로 쥐는 커다란 골칫거리였다. 인간이 수확하여 저장한 곡식들을 훔쳐 먹었을 뿐 아니라 한때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의 주요 매개체였기 때문이다. 반면 오랜 시간 인류의 건강과 생존에 위협이 되어 온 쥐와 대비되게, 쥐의 대표적인 천적인 고양이는 인류의 동료이자 친구로 자리 잡았다. 쥐는 육지에서뿐 아니라 바다에서도 골칫거리였다. 선원들의 생존과 직결된 식량뿐 아니라 선적 상품에까지 이빨을 대어 막대한 손실을 끼쳤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쥐들은 배 위의 밧줄이나 나무로 된 갑판을 갉아 항해를 방해하고, 각종 질병을 매개하였다. 1940년에 영국에서 발행된 공중 보건 보고서(Public Health care report)에서는 선상에서의 쥐의 특성과 잘 잡는 법, 사후 관리 등의 내용을 상세히 확인할 수 있는데, 20세기까지도 항해 과정에서 쥐가 끼치는 피해가 막대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쥐의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인간이 초기 항해에서부터 쥐에 대한 대응책으로 고양이를 활용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유럽에서의 길들여진 고양이의 첫 등장은 로마 철기 시대로 거슬러 내려간다. 이보다 훨씬 이전에 이집트와 서남아프리카 등지에서 길들여진 고양이의 증거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고대 교역로를 통하여 고양이가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시간이 흘러 바이킹 시대에 이르자 모피 산업이라는 동기 부여와 항해술의 발전으로 인해 고양이의 이동은 증가하였다. 고대부터. 이용된 고양이의 쥐 잡는 기능은 범선이 증기선으로 대체될 때까지 계속 유효했지만, 이후의 장에서 전개되듯이 항해에서 고양이가 차지하는 의미는 더욱 특별하게 확장되었다. 역사 속에서 인간의 항해에 식량 자원 혹은 가축이 아닌 입장으로 동승한 동물이 고양이뿐인 것은 아니다. 개, 앵무새, 원숭이 등의 다양한 동물들이 일종의 애완동물로서 항해에 동승하였다. 하지만 ‘함재묘‘(ship’s cat)의 경우는 공적인 기록에 언급될 정도로 특수하다. 19세기 영국 상법에는 만약 배에 고양이를 태운다면 쥐로 인해 선적 화물의 손실이 있더라도 배의 주인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면책 조항이 있었다. 배에다가 고양이를 태우는 행위가 곧 화물을 보호하고자 하는 최선의 방지책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영역동물이긴 하나 그 영역이 넓지 않고, 배에는 돛대와 같은 고양이가 선호하는 높은 시설들이 많다. 실제로 많은 기록에서 고양이가 돛대 위에 올라가 선원들을 내려다보기를 좋아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고양이의 뛰어난 균형 감각 또한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도 안정적으로 돌아다닐 수 있게 해 준다.. 뿐만 아니라 고양이는 정해진 영역에 배설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으며, 쥐 사냥을 통해 스스로 먹이 충당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고양이는 체내에서 스스로 비타민 C 합성이 가능한 동물이기 때문에 인간과 같은 영장류처럼 긴 항해로 인해 괴혈병에 걸릴 위험으로부터 자유롭다. 이러한 특성들 덕분에 고양이는 오랜 역사 동안 인간의 항해의 동반자가 될 수 있었다.
2.2 선원들의 친구, 고양이
항해술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은 점점 더 넓은 바다로 뻗어나가게 되었다. 항해라는 특수한 여행 상황과 배라는 고립된 공간 속에서 고양이는 선원들과 더욱 밀접한 정서적 교류를 주고받게 된다. 선원들이 쓰는 말 중에 ‘shipmate’라는 단어가 있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동료 선원이라 할 수 있는데, 한 단어집은 이를 한때는 형제보다 더 가까운 사이를 일컫는 단어였으나, 항해가 점점 짧아짐으로 인해 그 뜻이 약해진 단어라고 정의한다. 다르게 말하면, 항해가 곧 긴 여정이었던 시절에는 동료 선원이 형제보다 끈끈하게 느껴졌다는 뜻이다. 이러한 긴밀한 관계에 인간뿐 아니라 고양이도 포함되었다는 것을 고양이를 안고 있는 선원들의 모습이 담긴 다수의 사진들을 비롯한 다양한 기록들이 뒷받침한다.
사랑받는 함재 묘의 많은 예시들 중 하나로 1910년 남극을 향하는 배에서 제독과 선원들이 동승한 고양이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매우 즐거워하였다는 일기가 존재한다. 이 운 좋은 고양이는 다른 이들과 같은 잠자리에 설치된 전용 해먹에서 전용 베개와 담요에 파묻혀 자는 호사를 누렸다. 심지어는 어떤 용감한 함재 묘는 일반 선원보다 좋은 음식을 먹는 장교들의 옆에 앉아 그들이 먹는 고기를 호시탐탐 노렸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과거의 항해란 각종 위험이 전제된 여행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배라는 공간은 경직되고 엄격한 분위기를 띨 수밖에 없었다. 또한 여행이 기한 없이 길어질수록 선원들의 향수병이 심해져 우울해지고 예민해질 가능성도 높았다. 그러한 분위기를 고양이가 귀여운 외모와 재기 발랄한 행동을 통해 일정 부분 완화시켜주어 뱃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뱃사람들이 고양이를 단순히 귀여워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인 애정이 담긴 행동을 취하는 모습들도 종종 관찰된다. 대표적으로 고양이가 불의의 사고로 바다에 빠졌을 때 선원들이 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배를 돌리는 상황이 다수의 기록을 통해 나타난다. 반대로 고양이가 선원들의 목숨을 구한 사례들도 존재한다. 1898년과 1908년에 각각 배가 가라앉고 있는 와중에 갑판에서 자고 있던 선원을 함재 묘가 깨워서 살 수 있었던 사건과 함재 묘의 예민한 감각 덕에 배가 빙산과의 충돌을 피한 사건이 신문에 실린 바 있다.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함재묘와 선원들이 일방적인 정서적 관계가 아닌 상호적 유대 관계를 맺는 경우가 흔했음을 알 수 있다. 단체. 사진에는 종종 고양이를 사랑스럽게 안고 있는 선원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3.1 항해 관련 미신 속 고양이
배에서 고양이는 쥐를 잡고 선원의 안정을 도와주는 도구적인 존재 이상으로 상징적인 의미를 가졌다. 고양이와 항해에 관한 다양한 미신의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서양에서 일반적으로 불운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검은 고양이가 항해에 있어서는 행운을 상징하였다는 점이다. 이에 많은 어부의 아내들은 집에서 검은 고양이를 키웠다. 또한 일반적인 발가락보다 많은 발가락을 지닌 고양이인 다지증 고양이 (polydactyl cats) 들도 배에서 최고의 행운으로 취급되었다. 여분의 발가락으로 보통의 고양이보다 더 높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최고의 쥐잡이였고, 많은 선원들은 그들이 험준한 바다에서도 더 나은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외에도 고양이의 행동에 따라 날씨를 예측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에 대한 기록이 있다. 예를 들어 고양이의 꼬리는 마법의 능력을 지니고 있어 폭풍우를 시작할 수 있다는 미신, 고양이가 배에서 떨어지면 항해 중 배가 폭풍을 만나 침몰하거나 9년간 저주에 걸린다는 미신, 고양이가 곡물과 떨어져 털을 핥으면 해일이, 재채기를 하면 비가, 기분 좋게 갑판을 뛰어다니면 바람이 분다는 미신 등이 있었다.
3.2 마스코트로서의 고양이
함재 묘는 세계대전을 거치며 배의 마스코트로서 기능하기도 하였으며, 훌륭한 선원으로서 그 능력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영국 해군의 경우에는 범선에서 기계선의 시대로 바뀐 다음까지도 함재 묘의 전통과 상징성에 따라 1970년대까지도 고양이를 태웠던 기록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영국 HMS Amethyst호에 탑승했던 고양이 Simon은 1949년 양쯔사건에서 (자수정 사건) 대포에 의한 부상으로부터 살아남아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고, 전장 속에서도 충실하게 ‘쥐잡이’ 임무를 수행한 공로를 인정받아 PDSA의 Dickin 훈장을 수여받았다. 잉글랜드의 항해사이자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지명을 제안한 메슈 플린더스(Matthew Flinders)의 고양이 Trim은 그에 대한 책, 동상, 묘비 등이 남아 있을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가장 유명한 함재묘 중에는 Oscar가 있다. Oscar는 머물렀던 함선들이 모두 침몰하였지만 살아남은 걸로 유명해져 불침 묘 샘 (Unsinkavble Sam) 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독일 태생으로 Bismark 함의 함재 묘였지만 판자에 매달려 있던 오스카를 영국의 HMS Cossack 군의 구조된 후 Sam으로 명 되었다. 이후에도 타는 배마다 침몰하며 총 5번의 생사고비를 넘는 수난을 겪었지만 결국 살아남았다. Sam은 Unsinkable Sam이라는 상징적인 별명과 함께 아직까지도 영국 해양박물관에 그 그림과 기록이 전시되어있다.
4. 글을 맺으며
상대적으로 배에 적응하기 쉬우면서 쥐 사냥에 특화된 고양이의 습성으로 인해 함재묘(ship’s cat)는 고대부터 인간의 항해의 역사 속에 존재해왔다. 특히 18세기 이후의 서유럽 항해기들 속에 묘사된 함재 묘는 단순히 쥐를 잡는 수단적 역할을 넘어서 선원들과 상호적인 유대 관계를 맺으며 동료 선원(shipmate)으로서 존재하는 양상을 보인다. 오랜 역사속에서 고양이의 의미와 역할을 알아보는 것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후에도 인간 중심의 역사가 아닌 동물과 함께 만들어온 역사의 다양한 사례들을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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